한쪽에서 AI는 헌책을 통째로 사들여 학습 재료로 쓰고, 다른 쪽에서는 AI가 찍어낸 책이 아마존을 뒤덮습니다. 책의 세계가 양끝에서 동시에 흔들리고 있죠.

두 개의 흐름이 같은 곳에서 만나죠. BBC는 헌책이 학습 데이터를 노린 AI 업체들에게 대량으로 팔려 나가는 정황을 취재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한 연구는 AI가 생성한 책이 아마존 서가를 채우며 인간 저자의 매출을 갉아먹는 실태를 전문 분석으로 보여줬죠. 책이 AI의 입력이자 출력이 되는 장면입니다.
출처:
- Secondhand book sales are booming. Is it because of AI? – BBC
- AI text in self-publishing (Chakrabarty et al.) – arXiv
헌책이 창고로 실려 나간다
영국 노섬벌랜드의 헌책방 Barter Books를 운영하는 스튜어트 맨리는 보통 한 주에 2~3천 권을 팝니다. 그런데 최근 캐나다 한 업체의 단 한 번 대량 주문이 그 일주일 치와 맞먹었죠. “30년 헌책 장사에 이런 건 처음”이라는 반응이죠. 세계 곳곳의 서점들이 비슷한 초대형 주문을 보고했고, 책들의 최종 목적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의심은 AI를 향합니다. 실마리는 2025년 미국의 한 판결이죠. 판사 윌리엄 알섭은 이렇게 사들인 책으로 AI를 학습시키는 게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세 저자가 Anthropic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그 사용이 “대단히 변형적”이라 미국법상 허용된다는 판단이었죠.
지난달 법원 문서가 공개되며 드러난 대목이 불편함을 키웠죠. Anthropic이 Claude를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책들을 파괴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부에서 ‘Project Panama’로 불린 이 작업의 목표는 “세상의 모든 책을 파괴적으로 스캔”하는 것이었죠. 파괴적 스캔은 책등을 뜯어 페이지를 빠르게 훑고 남은 부분을 재활용하는 방식을 말하죠. Anthropic 측은 “희귀본이나 골동 도서를 사들여 파괴하는 데이터 프로그램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다만 이 해명은 회사 자체 설명이라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죠.
가짜 책이 서가를 채운다
반대편에서는 AI가 만든 책이 밀려듭니다. 한 연구팀은 짧은 미리보기가 아니라 책 전문(full text)을 기준으로 각 책을 분류했습니다. 오탐률 0.04%를 보고하는 Pangram v3.3 탐지기로, 책을 AI 텍스트 비율에 따라 세 구간으로 나눴죠. 없음, 경미(25%까지), 상당(25% 초과)입니다.
상당한 AI 콘텐츠를 담은 책은 조사 대상 카탈로그의 20%를 차지하는데, 매출은 12.1%, 수익은 11.3%에 그쳤습니다. 언뜻 보면 AI 책은 시장 바닥에 깔린 ‘슬롭’이라는 통념이 맞는 듯 보이죠. 연구는 이 해석이 진짜 시장 동학을 놓친다고 짚습니다.
진짜 문제는 ‘희석’이다
2023년 1분기부터 2026년 1분기까지, 누적 카탈로그는 38.3배로 불었습니다. 반면 분기당 팔리는 타이틀 수는 19.2배, 분기 수익은 8.9배 느는 데 그쳤죠. 훨씬 많은 책이 훨씬 더디게 자라는 수익 풀을 두고 경쟁하게 된 셈입니다.
더 눈에 띄는 건 AI 없는 책마저 타격을 받는다는 점이죠. 8개 장르 중 6개에서 2023년과 2025년 출간작의 권당 수익이 떨어졌고, AI 텍스트가 감지되지 않은 책만 따로 봐도 7개 장르에서 수익이 줄었습니다. 형편없는 AI 책이 카탈로그를 부풀려 평균을 끌어내린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하락이죠. 연구팀은 이 현상을 ‘희석(dilution)’이라 부르되, 관찰적·연관적 분석일 뿐 인과의 실험적 증명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책이 입력이자 출력이 될 때
두 흐름은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책이 AI를 먹이는 재료가 되는 동시에, AI가 찍어낸 책이 사람 저자의 자리를 밀어내는 것이죠. 읽고 쓰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내가 아끼던 헌책이 창고에서 분해되고 내가 고른 신간이 가짜 책들 사이에 파묻히는 장면이 한꺼번에 벌어지는 셈이죠. 두 자료 모두 아직 진행 중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 판결과 데이터가 어디로 향할지는 더 지켜볼 대목이 많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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