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OpenRouter에 회사 이름이 붙지 않은 무료 모델 하나가 조용히 올라왔습니다. 일주일도 안 돼 리더보드 1위에 올랐고, DeepSeek 사용량의 두 배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그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이름도 소속도 없이 등장한 이 스텔스 모델의 이름은 Ox Alpha였습니다. 8월 26일 Z.AI(옛 Zhipu AI)가 자사 GLM 계열의 새 버전임을 확인하면서 정체가 드러났죠. 곧 공개된 이름은 GLM-5.3-Flash. 중국산 AI 칩 위에서 돌아가고, 가중치까지 공개된 모델입니다.
출처:
- GLM-5.3-Flash: Frontier Intelligence, Flash Cost – Z.AI
- China’s Z.AI Made Ox Alpha Stealth Model That Rivals DeepSeek – Bloomberg (Yahoo Finance 전재)
이름을 숨기고 1위에 오르다
Ox Alpha는 8월 20일 OpenRouter, OpenCode, Cline 등에 나타났습니다. 소개글은 “코딩과 지속적 에이전트 작업, 프로덕션 워크로드를 위한 추론 모델”이라고만 적혀 있었고, 제작사는 “프리뷰 기간 동안 익명을 택한 제3자”로만 표기됐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다 밝히면서 누가 만들었는지는 비운 셈이죠.
반응은 빨랐습니다. 무료인 데다 성능이 좋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Ox Alpha는 OpenRouter 리더보드 최상위로 치고 올라가 DeepSeek 사용량을 두 배 넘게 앞질렀습니다. 이 마켓플레이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런칭이었고, OpenCode에서 56일간 이어지던 DeepSeek의 1위 행진도 여기서 끊겼습니다. OpenRouter를 인수 중인 Stripe의 CEO 패트릭 콜리슨마저 이 스텔스 공개를 “매우 인상적”이라 평했습니다.
정체를 숨긴 건 우연이 아닙니다. 이름을 가리면 브랜드에 대한 편견 없이 성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고, “이게 대체 누구 모델이냐”는 궁금증 자체가 화제를 만듭니다. 올여름 중국 랩들이 반복해서 꺼내 든 방식이기도 하죠.
정체 추적, 그리고 스펙
제작사를 찾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처음엔 구글, 샤오미, DeepSeek, 마이크로소프트의 MAI까지 후보로 거론됐습니다. 결정적 단서는 토크나이저 지문이었습니다. 한 개발자가 25개 프롬프트로 Ox Alpha가 텍스트를 토큰으로 쪼개는 방식을 재보니, 그 패턴이 다른 어느 랩보다 GLM 계열과 촘촘히 맞아떨어졌죠. GLM 계열이 유독 걸려 넘어지던 특정 토큰에서 Ox Alpha도 똑같이 헛디딘 점이 방향을 좁혔고, 이후 검증에서 11개 항목이 11개 모두 GLM과 일치했습니다.
정식 공개된 GLM-5.3-Flash의 스펙도 볼거리입니다. 총 3,200억 개 파라미터 중 실제로 활성화되는 건 180억 개인 구조로, 큰 모델의 지식을 갖추되 돌릴 때의 비용은 낮춥니다. 텍스트·이미지·영상을 모두 입력으로 받는 GLM-5 계열 첫 멀티모달 모델이고, 한 번에 약 100만 토큰을 읽습니다. Z.AI는 GLM-5.2 대비 10분의 1 가격에 코딩·에이전트 벤치마크에서 Claude Opus 4.8에 근접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 수치들은 회사가 직접 낸 자체 발표라는 점은 감안해서 봐야 합니다.
그 1위를 만든 표본 10개
여기서 이 이야기의 진짜 알맹이가 나옵니다. Ox Alpha를 바이럴로 밀어 올린 건 하나의 벤치마크 점수였습니다. “DeepSWE에서 Ox Alpha가 80%를 찍어 Claude Fable 5(65%)와 GPT-5.6 Sol(52%)을 제쳤다”는 주장이었죠. DeepSWE는 코딩 에이전트가 실제 깃허브 이슈를 첫 시도에 얼마나 해결하는지 재는 벤치마크로, 원래 91개 저장소에서 뽑은 113개 과제로 측정합니다.
그런데 그 80%는 개발자 벤 데이비스가 113개 중 10개만 돌려본 샘플이었습니다. 본인도 “10개짜리 부분집합이라 실제 점수는 편차가 클 수 있다”고 적었는데, 그 단서는 떨어져 나간 채 80%라는 숫자만 하루 만에 퍼졌습니다. 이후 113개 전체 과제로 두 번 돌린 결과는 63% 안팎, GPT-5.6 Sol과 사실상 동률이었습니다.
10개짜리 표본과 113개 전체의 차이가 여기서 갈립니다. 표본이 작을수록 우연히 잘 맞는 문제 몇 개에 점수가 휘둘릴 여지가 커지죠. 모델 소식을 볼 때 그 숫자가 몇 개짜리 표본에서 나왔는지, 자체 발표인지 독립 측정인지 한 번 확인하는 습관. 이번 사건이 그 습관의 값어치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스텔스 런칭은 정체를 숨겨 편견 없는 평가를 유도하는 영리한 방식입니다. 하지만 화제가 붙는 순간, 그 평가가 얼마나 얇은 근거 위에 서 있었는지도 함께 부풀려질 수 있다는 것. Ox Alpha는 한 사건 안에서 그 두 얼굴을 모두 보여준 사례입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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