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Apple이 오히려 가장 구체적인 AI 웨어러블 계획을 들고 나왔습니다. ChatGPT가 등장한 후 Siri는 조롱거리가 됐고, AI 투자에서도 OpenAI나 Google에 한참 밀린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 ‘패자’가 꽤 영리한 패를 쥐고 있을 수 있습니다.

Bloomberg의 Mark Gurman이 지난 4월 12일 뉴스레터에서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Apple은 현재 ‘N50’이라는 코드명으로 디스플레이 없는 AI 스마트글래스를 개발 중입니다. 빠르면 2026년 말 발표, 2027년 봄~여름 출시가 목표입니다. 같은 날 Apple AI의 수장이었던 John Giannandrea도 공식적으로 회사를 떠났습니다.
출처: Apple AI smart glasses, Giannandrea leaving – Bloomberg Power On (Mark Gurman)
디스플레이는 없고, AI는 있다
N50은 Meta의 Ray-Ban 스마트글래스와 비슷한 포지션입니다. 렌즈에 화면을 띄우는 AR 글래스가 아니라, 카메라와 마이크를 품은 AI 웨어러블이죠.
기능은 사진·동영상 촬영, 통화, 알림 수신, 음악 재생, 그리고 업그레이드된 Siri와의 AI 연동입니다. iOS 27과 긴밀하게 통합되며, iPhone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9to5Mac은 이를 두고 “Apple Watch와 AirPods의 중간 어딘가”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iPhone에 의존하는 정도는 Apple Watch보다 더 깊습니다.
디자인에서는 Apple다운 전략이 보입니다. 대형 직사각형(Ray-Ban Wayfarer 스타일), 슬림 직사각형(팀 쿡이 착용하는 스타일), 대형 원형·타원형, 소형 원형·타원형으로 총 네 가지 프레임을 동시 테스트 중입니다. 소재는 플라스틱이 아닌 아세테이트, 색상은 블랙·오션 블루·라이트 브라운. Meta가 Ray-Ban과 손잡은 것과 달리, Apple은 인하우스 디자인을 고집합니다. 2015년 Apple Watch 첫 출시 때처럼 다양한 스타일과 색상으로 동시 선보이겠다는 계획입니다.
카메라는 전면에 타원형으로 배열되고 주변에 표시등이 둘러싸는 형태로, 경쟁 제품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Giannandrea 퇴사가 의미하는 것
같은 날 이뤄진 John Giannandrea의 퇴사는 Apple AI 전략의 한 챕터가 공식적으로 닫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Apple은 2025년 12월 공식 발표를 통해 그가 2026년 봄 은퇴한다고 밝혔고, 4월 15일 스톡 베스팅 일정에 맞춰 어드바이저 역할을 마무리한 것입니다.
2018년 Google에서 영입된 Giannandrea는 Apple의 AI·머신러닝 전략을 총괄했지만, Apple Intelligence의 부진한 출시 이후 팀 쿡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2025년 3월에 이미 Siri팀 지휘권을 박탈당했고, 그 자리는 Vision Pro를 이끌었던 Mike Rockwell이 넘겨받았죠.
후임은 Amar Subramanya입니다. Google에서 16년, Microsoft에서 AI 부사장을 거친 인물로, 이제 Craig Federighi에게 보고하며 Apple Foundation Models, ML 연구, AI 안전을 담당합니다. AI 거버넌스 구조가 분산에서 통합으로 바뀐 셈입니다. WWDC에서 공개될 iOS 27의 새 Siri 기능이 이 새 체제의 첫 번째 성과물이 됩니다.
‘AI 패자’가 유리할 수 있는 이유
AI 모델 자체가 빠르게 범용화되고 있습니다. 1년 반 전이면 최첨단 수준이었을 모델이 이제 노트북에서 돌아갑니다. adlrocha에 따르면 Google의 오픈 모델 Gemma 4는 스마트폰에서 구동되면서도 MMLU Pro 기준 85.2%를 기록했습니다. 모델의 성능 격차가 좁혀질수록, 누가 더 좋은 모델을 가졌는가보다 누가 더 풍부한 개인 컨텍스트를 가졌는가가 중요해집니다.
여기서 Apple의 강점이 드러납니다. 25억 대의 활성 기기, Apple Watch의 건강 데이터, iPhone에 쌓인 사진·메시지·위치 기록, 그리고 기기 안에서만 처리되는 온디바이스 구조. 모델 성능 경쟁에 수백조 원을 쏟아붓는 대신, Apple은 사용자의 개인 컨텍스트를 이미 쥐고 있습니다.
스마트글래스는 이 컨텍스트를 한 차원 더 확장합니다. 사용자가 무엇을 보고, 어디에 있고, 어떤 환경에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센서가 되는 것이죠. AI 기능의 핵심이 ‘무엇이든 추론할 수 있는 모델’에서 ‘나를 아는 모델’로 이동하고 있다면, 스마트글래스는 그 컨텍스트 수집의 최전선이 됩니다.
AI 모델은 Google Gemini에서 라이선스로 충당합니다. 직접 구축하는 대신, 필요한 클라우드 추론 능력을 구매하는 방식입니다. Apple은 모델 레이스에 뛰어들지 않았고, 그 덕분에 현금을 쌓아두었습니다. 경쟁사들이 인프라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동안, Apple은 선택지를 열어두었습니다.
물론 Apple의 AI 실행력에는 물음표가 남아 있습니다. Siri의 부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스마트글래스 역시 발표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N50이 실제로 어떤 AI 경험을 제공할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습니다. adlrocha의 Substack 글은 이 모든 상황이 Apple의 치밀한 전략인지, 아니면 운 좋은 타이밍인지도 가늠하기 어렵다고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다만 지금 이 시점의 N50 발표와 AI 조직 개편은, Apple이 그 ‘운’을 실행력으로 연결하려 한다는 시도로 읽힙니다.
참고자료:
- Apple is building smart glasses without a display to serve as an AI wearable – The Decoder
- Apple Glasses to sport high-end designs using premium materials – 9to5Mac
- John Giannandrea to retire from Apple – Apple Newsroom
- Former AI boss John Giannandrea officially leaving Apple – 9to5Mac
- How the “AI Loser” may end up winning – adlrocha (Subs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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