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구체적인 데이터는 드뭅니다. 어떤 직업이 정말로 타격을 받고 있고, 어떤 직업은 예상과 달리 견고한 걸까요?
Bloomberry의 데이터 분석가가 2023년 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전 세계 1억 8천만 개의 채용공고를 분석해 답을 찾았습니다. 단순한 산업별 분석이 아니라, 650개의 구체적인 직무 타이틀별로 2년간의 변화를 추적한 연구입니다.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출처: I analyzed 180M jobs to see what jobs AI is actually replacing today – Bloomberry
창의직의 양극화: 실행은 무너지고 전략은 버틴다
가장 눈에 띄는 패턴은 창의 분야의 분열입니다. 컴퓨터 그래픽 아티스트는 33%, 사진작가와 작가(카피라이터, 테크니컬 라이터 포함)는 각각 28% 감소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2년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보입니다.
하지만 같은 창의 분야라도 결과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매니저, 프로덕트 디자이너 같은 전략적 역할은 전체 시장 평균(-8%)보다 선방했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도 -6%로 작가나 사진작가보다 훨씬 나은 성적을 기록했죠.
차이는 명확합니다. AI가 대체하는 건 ‘실행’입니다. 이미 정해진 스타일로 이미지를 만들거나, 정해진 포맷으로 글을 쓰는 작업 말이죠. 반면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며 피드백을 해석하고, 사용자 리서치를 바탕으로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입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무엇을, 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안, AI는 그 결정을 시각화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예상을 빗나간 안전지대들
AI가 가장 먼저 대체할 거라던 직업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놀랍게도 버티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GitHub Copilot, Claude Code 같은 AI 코딩 도구가 쏟아지는 시대에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채용은 거의 변동이 없었습니다(-0.4%). 백엔드 엔지니어는 오히려 3% 증가했고,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만 -9%로 평균보다 약간 더 하락했습니다. 저자는 Replit, Lovable, Bolt.new 같은 간편한 프론트엔드 생성 도구의 영향일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AI 도구는 엔지니어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증폭시키고 있었습니다. Copilot을 쓰는 개발자는 반복적인 코드 작성에서 벗어나 더 복잡한 문제에 집중하고, 더 빨리 기능을 출시합니다. 생산성이 올라가니 기업은 엔지니어를 줄이는 대신 더 많은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고객 서비스 직원: AI 챗봇이 곧 고객 서비스를 대체할 거라던 예측도 빗나갔습니다. 고객 서비스 담당자 채용공고는 -4%로 전체 평균보다 오히려 나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Klarna가 AI로 고객 서비스팀을 교체했다가 다시 사람을 고용한 사례는 상징적입니다. 챗봇은 간단한 질문에는 괜찮지만, 화난 고객을 달래거나 예외 상황을 판단해 환불을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필요합니다. 공감과 판단력은 아직 AI가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죠.
직급 격차: 위로 갈수록 안전하다
가장 역설적인 발견은 이것입니다. 전체 채용공고가 8% 줄어드는 동안, 임원급 채용은 겨우 1.7%만 감소했습니다. 중간관리자는 -5.7%, 실무자는 -9%였죠. 직급이 높을수록 AI의 타격을 덜 받았습니다.
성장률 상위 10개 직무 중 5개가 디렉터급 이상이었습니다. 데이터 엔지니어링 디렉터는 23%, 부동산 디렉터는 21%, 법무 디렉터는 21% 증가했습니다. 기업들은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전략적 리더는 늘리면서, “어떻게 할지”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와 실제로 실행하는 실무자는 줄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AI가 이 현상을 가속화합니다. Cursor로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제품 담당 VP는 예전만큼 많은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Claude로 기술적 접근을 검증할 수 있는 임원은 더 적은 팀으로 더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죠. AI 도구가 실무자를 위협하는 동안, 같은 도구가 임원들은 더 강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AI가 만드는 일자리도 있다
당연히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자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머신러닝 엔지니어 채용은 40% 급증해 전체 직업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2024년에도 78% 증가했던 걸 감안하면 2년 연속 폭발적 성장입니다. 로보틱스 엔지니어(+11%), 기술 분야 연구/응용 과학자(+11%), 데이터센터 엔지니어(+9%)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흥미로운 직업도 있습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전문가가 18.3% 증가하며 마케팅 분야에서 거의 유일하게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이것도 2년 연속 상승세입니다. SparkToro 창업자 랜드 피시킨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검색엔진과 소셜 네트워크가 외부 트래픽을 급격히 줄이면서 대부분의 디지털 마케팅 직군이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 와중에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직접 트래픽을 유도하지 않고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로클릭 마케팅을 활용하는 몇 안 되는 분야입니다.”
인터넷이 AI 생성 콘텐츠로 넘쳐나면서 사람들은 진짜 사람의 목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검색 결과는 AI가 만든 쓰레기 같고, 배너 광고는 원래도 성가셨는데 이제 AI가 만들었고, 이메일은 대충 봐도 AI가 쓴 티가 납니다. 하지만 TikTok에서 또래 크리에이터가 진심으로 추천하는 스킨케어 제품은 여전히 진짜처럼 느껴집니다.
이 데이터가 말하는 것
2년간의 추세는 명확한 패턴을 보여줍니다. AI는 예측 가능하고 반복적이며 구조화된 작업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형식으로 글 쓰기, 주어진 스타일로 이미지 만들기, 데이터 입력하기 같은 일들이죠.
하지만 판단이 필요한 일, 전략을 짜는 일, 공감과 설득이 필요한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창의 실행직은 무너지는데 창의 전략직은 버티고, 고객 서비스는 예상보다 견고하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AI 도구로 무장한 채 오히려 더 가치 있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데이터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채용공고가 곧 실제 고용은 아니고, 2년은 장기 트렌드를 판단하기엔 짧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아티스트나 작가처럼 2년 연속 하락하는 직업은 우려스럽지만, 의료 스크라이브처럼 올해 갑자기 20% 떨어진 직업은 내년을 더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AI가 만드는 세상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대량 실업의 공포보다는, 선택적이고 구조적인 재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의 직업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아는 것, 그게 지금 가장 중요한 준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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