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게재된 GECCO 학회 논문 한 편이 잊혀진 웹사이트 하나를 다시 불러왔습니다. Picbreeder입니다. 사람들이 그저 “재밌어 보이는” 이미지를 고르기만 하면, 그 선택이 쌓이고 쌓여 여러 세대를 거치며 얼굴이나 동물, 자동차, 해골 같은 형태가 저절로 나타났던 사이트입니다. 목표는 없었습니다. 정해진 정답도, 채점 기준도 없었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이거 괜찮은데” 하고 고른 것들이 다음 세대의 부모가 됐을 뿐입니다.
케네스 스탠리 교수는 이 실험을 근거로 책 한 권을 썼습니다. “목표라는 환상.” 목표를 명확히 세우는 일이 오히려 정말 위대한 발견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역설을 다룬 책입니다. Picbreeder가 그 핵심 사례였습니다.

Sakana AI가 MIT, NYU와 함께 이 실험을 다시 열었습니다. 이번엔 사람이 아니라 시각언어모델(VLM) 에이전트들이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출처: The AI Picbreeder Experiment – Sakana AI
목표도, 정답도 주지 않았다
실험 설계는 원본 Picbreeder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에이전트들은 공유 아카이브를 함께 씁니다. 그 안에서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골라 새로운 후보로 진화시키고, 자기가 만든 것 중 마음에 드는 걸 공개하고, 다른 에이전트가 만든 것도 평가합니다.
목표 이미지는 없습니다. “진보”가 무엇인지도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에이전트 스스로의 판단, “이게 흥미로운가”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과 비슷했지만, 자꾸 제자리를 맴돌았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VLM 에이전트들은 사람과 달리 비슷한 이미지, 비슷한 개념 주위를 계속 맴돌았습니다. 비슷한 부모를 반복해서 골랐고, 큰 개념적 도약보다는 이미 손에 쥔 아이디어를 조금씩 다듬는 쪽을 택했습니다. 흥미로운 걸 발견해도 그 발견을 발판 삼아 더 멀리 뛰기보다, 그 자리에서 맴돌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변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에이전트마다 서로 다른 “성격”을 부여하고 다양한 집단을 구성하자 탐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어떤 실행에서는 다양한 성격의 에이전트 집단이 만들어낸 아카이브가 의미적 다양성에서 사람이 만든 아카이브에 근접하거나 맞먹기까지 했습니다.
부수적인 발견도 있었습니다. 에이전트들이 진화시킨 해골 이미지 하나는, 그 이미지를 만드는 내부 신경망 표현에 살짝 변형을 가해도 비교적 매끄럽게 반응했습니다. 경사하강법으로 직접 최적화한 해골보다는 덜 깨졌다는 뜻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집단으로 진화시킨 해골만큼 깔끔하게 정돈되지는 않았습니다.
우연을 발견으로 바꾸는 능력, 그것이 아직 없다
연구팀이 가장 흥미롭다고 꼽은 결과는 따로 있습니다. 좁혀지지 않고 끝까지 남은 격차입니다.
사람은 우연히 나온 결과를 알아보는 데 능합니다. 뜻밖의 무언가가 나왔을 때 “어, 이거 뭔가 있는데” 하고 감을 잡고, 그걸 붙들어 다듬은 다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뛰어오릅니다. 우연을 발견으로, 발견을 도약으로 이어 붙이는 능력입니다.
AI 에이전트도 흥미로운 패턴을 알아채긴 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알아챈 패턴에 갇혀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발견까지는 하는데, 그 발견을 딛고 더 멀리 뛰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구팀은 이 격차의 원인을 아직 정확히 모른다고 솔직히 밝힙니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열린 탐색을 해낼 수 있게 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지금의 AI 시스템에 무엇이 빠져 있는지는 여전히 미해결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실험이 던지는 질문은 실험실 밖에서도 유효합니다. 목표 없이 일하는 에이전트, 이를테면 브레인스토밍을 돕거나 열린 탐색형 리서치를 맡기는 에이전트를 설계하거나 쓸 일이 있다면, 이 결과는 왜 AI가 특정 아이디어 주변에서 좁게 맴도는 경향을 보이는지, 그리고 사람의 개입이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필요해지는지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아직은 답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지만, 그 질문의 윤곽만큼은 꽤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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