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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논문에 AI 사용, 괜찮을까? – Nature 대규모 설문이 밝힌 연구자들의 분열된 의견

ChatGPT가 등장한 지 2년이 지나면서, 인공지능은 이제 우리 일상의 많은 영역에 스며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학술 연구 분야는 AI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영역 중 하나입니다. 논문 작성부터 동료 심사까지, AI 도구들이 연구자들의 작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AI 기술이 학술 연구와 논문 작성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출처: Unsplash)

하지만 이런 변화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과학 논문에 AI를 사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최근 Nature가 전 세계 5,000여 명의 연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 설문조사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을 제시했습니다.

학술계를 둘로 나눈 AI 사용 논란

Nature의 설문조사 결과는 한 마디로 ‘분열’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AI 사용에 대해 극명하게 다른 의견을 보였으며, 심지어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설문은 가상의 연구자 ‘블로그스 박사’가 다양한 상황에서 AI를 사용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각각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예를 들어, AI를 사용해 논문 초안을 작성하거나, 특정 섹션을 쓰거나, 동료 심사를 진행하는 경우 등이었습니다.

편집과 번역: 압도적 지지

흥미롭게도 AI 사용에 대한 의견이 가장 일치하는 영역이 있었습니다. 바로 논문 편집과 번역 작업입니다. 응답자의 90% 이상이 AI를 사용해 자신의 논문을 편집하거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문제없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매우 의미 있는 결과입니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연구자들에게 AI는 언어 장벽을 낮춰주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한 스페인의 인문학 연구자는 “AI를 사용해 스페인어에서 영어로, 또는 그 반대로 번역한 후 집중적으로 편집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텍스트 생성: 의견 분열의 핵심

하지만 AI가 실제로 텍스트를 생성하는 영역에서는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전체 응답자의 65%는 AI를 사용해 논문의 일부 또는 전체를 작성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허용된다고 봤지만, 나머지 35%는 반대 의견을 표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논문의 어떤 부분을 AI가 작성하느냐에 따라서도 의견이 달랐습니다. 초록(Abstract) 작성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했지만, 결과(Results) 섹션에 AI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AI writing research papers survey results 논문의 각 섹션별 AI 사용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견 (출처: Nature)

동료 심사에서의 AI: 신중론 우세

동료 심사(Peer Review) 영역에서는 더욱 신중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AI를 사용해 초기 심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60% 이상이 부적절하다고 답했습니다. 이 중 약 25%는 개인정보 보호 우려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AI를 보조 도구로 사용해 특정 질문에 답하는 것에 대해서는 57%가 허용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AI를 완전히 배제하기보다는 인간 연구자의 판단을 돕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열린 태도를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말과 실제 사용의 괴리

설문 결과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견 중 하나는 연구자들의 의견과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였습니다. AI 사용을 허용한다고 답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AI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용도인 논문 편집의 경우에도 실제로 사용해본 사람은 28%에 불과했습니다. 논문 초안 작성, 요약 작성, 번역, 동료 심사 지원 등은 모두 8% 이하의 사용률을 보였습니다. 전체 응답자의 65%는 제시된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AI를 사용한 경험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AI usage statistics among researchers 연구자들의 실제 AI 사용 경험 통계 (출처: Nature)

더 중요한 문제는 AI를 사용한 연구자들 중 대다수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학술 출판계에서 요구하는 투명성 원칙과 상충되는 부분입니다.

세대간, 지역간 차이의 의미

설문 결과를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몇 가지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납니다.

경력이 짧은 젊은 연구자들이 AI 사용에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특히 논문 편집 영역에서 이런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이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적으로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가의 연구자들이 AI를 더 많이 활용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AI 사용의 윤리성에 대한 의견 자체는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는 언어적 필요에 의한 실용적 사용과 윤리적 판단이 별개의 문제임을 시사합니다.

연구자들의 솔직한 목소리

설문에 참여한 연구자들의 자유 응답을 보면, AI 사용에 대한 복잡하고 다층적인 고민들이 드러납니다.

한쪽 극단에서는 “AI는 이미 계산기처럼 일상적인 도구가 되었고, 공개할 필요도 없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태국 출라롱콘 대학의 생의학 연구자는 “AI는 이미 표준이 되었으며, 공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생성형 AI를 논문 작성이나 심사에 사용하는 것은 비참한 속임수이자 사기”라고 강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점을 찾고 있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감염병 연구자인 다니엘 이건은 “AI가 시간을 절약해주고 복잡한 정보를 종합하는 데 뛰어나지만, 너무 의존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AI를 사용함으로써 때로는 고된 과정을 통해 배울 기회를 스스로 빼앗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품질과 신뢰성의 문제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한 또 다른 문제는 AI가 생성하는 내용의 품질이었습니다. 일부는 AI가 “잘 포장된 쓰레기”를 만들어낸다고 표현했습니다. 거짓 인용, 부정확한 진술, 도구마다 다른 품질 등이 주요 우려사항으로 제기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AI를 학술 연구에 활용할 때 단순히 윤리적 허용 여부를 넘어서, 과학적 정확성과 신뢰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

이번 설문 결과는 학술계가 AI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먼저, 연구자들 사이의 의견 분열이 크다는 것은 아직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각 학회와 저널들이 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AI 사용 지침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둘째, 실제 사용률과 허용 의견 사이의 괴리는 현재의 정책이나 문화가 연구자들의 실제 필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너무 엄격한 규제보다는 투명성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인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셋째, AI 사용의 공개와 투명성 문제는 학술 출판의 신뢰성과 직결됩니다. 연구자들이 AI 사용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공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언어적 불평등 해소라는 AI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합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연구자들에게 AI는 공정한 학술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한 시점

AI가 학술 연구에 미치는 영향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을 어떻게 윤리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입니다.

Nature의 설문 결과는 학술계가 아직 이 문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관점과 우려사항들이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입니다.

앞으로는 극단적인 금지나 무제한 허용보다는, 투명성과 품질 보장을 기반으로 한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합니다. AI는 연구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연구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술 연구의 본질적 가치인 정확성, 독창성, 정직성은 결코 타협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Is it OK for AI to write science papers? Nature survey shows researchers are spl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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