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내려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보통 좋지 않은 징조로 여겨지죠. 사람들이 “어차피 나중에 더 싸질 텐데”라며 구매를 미루기 시작하면, 소비 감소 → 수요 감소 → 매출 감소 →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스타트업 세계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AI 덕분에 소프트웨어 개발이 점점 쉬워지면서, 많은 창업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금 만들 수도 있는데… 6개월만 기다리면 훨씬 쉽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스타트업 엔지니어이자 창업자인 Ben Anderson은 이 현상을 ‘기술적 디플레이션(Technical Defla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 글은 AI 시대의 스타트업이 직면한 타이밍 딜레마를 다룹니다. 개발이 점점 쉬워진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인데, 역설적으로 “그럼 언제 시작해야 하나?”라는 새로운 고민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2023년 창업자와 2024년 창업자 사이에 벌어진 격차는 이 문제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출처: Technical Deflation – Ben Anderson
왜 개발이 점점 쉬워지는가
기술은 늘 발전해왔지만, 지금은 좀 다릅니다. 두 가지 힘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어요.
첫째, AI 모델 자체가 좋아지면서 AI 기반 애플리케이션이 단순해졌습니다. 이전에는 AI가 실패했을 때 다시 시도하는 복잡한 처리나 정교한 프롬프트가 필요했던 작업들을 이제 LLM에 맡기면 됩니다. 유효한 JSON을 생성하라고 하면 그냥 생성해주죠. 워크플로우의 단계가 줄어들고, 긴 컨텍스트 윈도우에 뭐든 던져 넣어도 대충 작동합니다.
둘째, AI가 코드를 작성해줍니다. Anderson은 “functioning(작동하는)” 코드라고 조심스럽게 표현했지만, 핵심은 명확합니다. Claude Code 같은 도구 덕분에 중간 난이도 정도까지는 “기본적으로 원하는 걸 하는” 코드를 얻을 수 있게 됐어요. 11개의 중첩된 try-catch 블록이 있고 동시 사용자 5명이면 메모리가 터질 수도 있지만, 일단 작동은 합니다. 스타트업에게는 당장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죠.
이 개발 속도는 게임 체인저입니다. 스타트업이 수년간 제품을 쌓아온 기존 기업에 맞서 빠르게 필수 기능들을 구축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예전엔 고객의 가장 큰 pain point 하나만 해결하는 제품으로 시작해서 천천히 나머지를 만들어야 했다면, 이제는 핵심 기능도 잘 만들면서 테이블 스테이크 기능들도 빠르게 추가할 수 있습니다.
“데스크톱 앱은 영원히 안 만들 겁니다”
Anderson은 웹 애플리케이션을 주로 만들어왔는데, 종종 “데스크톱 버전 만들어주세요”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프라이버시나 오프라인 기능 같은 합리적인 이유들이 있었죠.
2024년에 이런 요청이 들어왔을 때, 그는 시간 투자를 정당화할 수 없었습니다. Electron이나 Tauri 같은 도구가 있긴 하지만, 작은 팀으로 웹 앱과 똑같은 기능의 앱을 별도로 빌드하고 테스트하고 유지보수하는 건 새 기능 추가보다 우선순위가 낮았어요.
하지만 지금 그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최신 모델로 2-3주면 데스크톱 앱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쁘지 않네. 할 만해. 그런데… 다음 모델을 기다리면 1-2주면 되지 않을까? 좀 더 기다려서 그다음 모델이 나오면 한 번에 뚝딱 만들어줄 수도 있고. 아마 아니겠지만, 그럴 수도 있잖아. 에이, 그냥 기다리자.”
디플레이션처럼, 필수적이지 않은 구매는 연기됩니다.
1년 차이가 만든 엄청난 격차
스타트업 세계에서 “먼저 시작한다고 이기는 건 아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늦게 시작하면 경쟁자들의 실수에서 배울 수 있고, 그 실수를 피해서 이길 수도 있죠.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너무 일찍 시작하는 건 틀린 것과 같으니까요. Doordash는 늦게 나타나서 GrubHub를 제쳤고, Lyft는 Uber와 시장을 나눠 가졌습니다.
그런데 AI의 빠른 발전은 이 격차를 극단적으로 벌려놓았습니다. Anderson은 2023년에 회사를 시작했는데, 당시를 회상하며 “아무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GPT-3.5-Turbo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고, GPT-4는 느리고 엄청나게 비쌌죠. Structured outputs도 없었고, LangChain이 최첨단 프레임워크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파인튜닝은 512토큰, 많아야 2048토큰까지만 가능했고요.
2023년에 창업한 많은 사람들이 피봇 지옥에 빠지거나, 운 좋게 성공했더라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플라잉 버트레스를 연상시키는 복잡한 scaffolding을 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1년 후인 2024년에 나타나서 똑같은 걸 시도한 회사들은 별 노력 없이 첫 시도에 바로 성공했어요.
이게 기술적 디플레이션의 실체입니다. 지금 만들 수 있는 모든 게 6개월 후엔 더 쉬워질 거라면, 대체 언제 시작해야 할까요?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Anderson은 명확한 답을 내놓진 않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하죠.
한 가지 답은 “유통(distribution)에 집중하라”입니다. 만드는 게 쉬워졌다면, 해자는 만드는 것 이외의 무언가여야 합니다. 고객과 그들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것은 일찍 시작해서 얻을 수 있는 진짜 이점이고, 다음 세대 AI 모델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입니다.
또 다른 답은 소프트웨어가 공짜이고 일회용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활용하는 겁니다. 데모가 완전히 작동하는 풀스택 애플리케이션이 될 수도 있고, 컨설팅과 커스텀 소프트웨어가 확장 가능해질 수도 있어요. AI 고객 지원 에이전트를 만드는 Giga AI는 많은 성공한 스타트업이 선호하는 “forward deployed engineer” 모델을 포기하고, 스스로 커스터마이징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코딩 에이전트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Anderson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결국 다음 세대 AI 모델이 나왔을 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지켜봐야 한다는 게 그의 솔직한 결론입니다.
기술적 디플레이션이 남긴 질문
이 글이 흥미로운 이유는 AI 발전의 이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개발이 쉬워진다”는 긍정적인 변화가 “그럼 언제 시작할까?”라는 전략적 마비를 낳을 수 있다는 거죠. 특히 스타트업처럼 타이밍이 생명인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Anderson의 관찰에서 한 가지 분명한 건, 기술 스택이나 개발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6개월만 기다리면 더 나은 도구를 쓸 수 있으니까요. 결국 고객 이해, 시장 장악, 유통 능력 같은 “빌딩 이외의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러니는 남습니다. 이 모든 고민의 전제는 “계속 더 좋아질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하지만 누가 알겠어요? 어쩌면 지금이 진짜 시작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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