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The Velvet Sundown의 홍보 이미지 (출처: TechRadar)
한 달 만에 50만 명의 청취자를 확보하며 Spotify에서 화제가 된 밴드 ‘The Velvet Sundown’. 하지만 이들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음악 산업에 충격파가 일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밴드, 즉 AI가 만들어낸 완전한 허상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적 호기심을 넘어서 AI 시대 창작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AI가 만든 음악과 인간이 만든 음악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런 변화가 실제 아티스트들과 음악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한 달 만에 50만 청취자를 속인 가상의 밴드
The Velvet Sundown은 2025년 6월 말 Spotify에 등장했습니다. 클래식 록에 오토튠을 가미한 몽환적인 사운드로 빠르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죠. ‘Floating On Echoes’와 ‘Dust and Silence’ 두 장의 앨범을 연달아 발표하며 단숨에 50만 명 이상의 월간 청취자를 확보했습니다.
밴드 프로필에는 보컬과 멜로트론 연주자 Gabe Farrow, 기타리스트 Lennie West, 신스 연주자 Milo Raines,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의 퍼커션 연주자 Orion “Rio” Del Mar 등 4명의 멤버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바이오그래피에는 “The Velvet Sundown에는 뭔가 매혹적인 것이 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는 신비로운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었죠.
하지만 리스너들이 의심을 품기 시작한 건 음악 자체였습니다. 각 트랙마다 보컬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달랐고, 전체적으로 ‘영혼 없는’ 느낌의 음악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었습니다. Reddit과 X(구 트위터)에서 밴드 멤버들에 대한 어떤 검증 가능한 정보도 찾을 수 없다는 의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증거는 6월 27일 개설된 밴드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나왔습니다. 앨범 성공을 축하하며 햄버거를 먹는다는 사진을 올렸는데, 테이블 위의 햄버거와 접시 개수가 맞지 않고 음식과 음료가 무작위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밴드 멤버들 모두 AI 생성 이미지 특유의 비현실적으로 매끄럽고 대칭적인 외모를 보여주고 있었죠.
The Velvet Sundown의 ‘라이브’ 연주 모습으로 올려진 AI 생성 이미지 (출처: TechRadar)
AI 음악 생성 기술의 현주소
The Velvet Sundown 사건은 AI 음악 생성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Suno, Udio 같은 AI 음악 생성 플랫폼은 이제 단순한 멜로디가 아닌 가사, 보컬, 연주까지 포함한 완성된 곡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특히 The Velvet Sundown의 음악은 The Eagles, JJ Cale, Allman Brothers 같은 기존 아티스트들의 스타일을 교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는 AI가 방대한 음악 데이터를 학습해 기존 스타일들을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AI 음악을 식별할 수 있는 단서들이 존재합니다:
음악적 특징: 트랙마다 보컬 톤이 미묘하게 다르고, 전체적으로 일관성 있는 아티스트적 개성이 부족합니다. 또한 ‘무난하고 공격적이지 않은’ 배경음악 스타일의 특징을 보입니다.
시각적 단서: 앨범 커버가 동일한 AI 프롬프트로 생성된 듯한 유사한 초현실적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고, 밴드 사진들이 명백히 AI 생성 이미지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메타데이터 부족: 실제 아티스트라면 존재해야 할 과거 활동 이력, 인터뷰, 라이브 공연 기록 등이 전혀 없습니다.
흥미롭게도 Deezer는 자체 AI 탐지 시스템을 통해 The Velvet Sundown의 앨범에 “일부 트랙이 인공지능을 사용해 만들어졌을 수 있음”이라는 경고 문구를 표시했습니다. 반면 Spotify와 Apple Music은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 아티스트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
The Velvet Sundown 현상이 음악 산업에 던지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특히 이미 어려운 상황에 처한 신진 아티스트들에게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Spotify는 2024년부터 연간 1,000회 미만의 스트리밍을 기록하는 곡들에 대해서는 수익 배분을 중단했습니다. 전체 플랫폼 음악의 86%가 이 기준에 해당한다고 추정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AI가 생성한 음악이 청취자들의 관심을 가져간다는 것은 실제 아티스트들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입니다.
더 큰 문제는 AI 음악이 가진 ‘비용 효율성’입니다. 실제 밴드라면 필요한 연습, 녹음, 프로모션, 라이브 공연 등의 비용과 시간이 AI에게는 필요 없습니다. 단순히 프롬프트 몇 개와 적은 비용으로 무한정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죠.
Forbes의 2024년 말 보고서에 따르면, AI 생성 콘텐츠가 시장을 포화시켜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가시성과 수입 면에서 경쟁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2025년 AI 생성 음악이 음악 산업 수익을 17.2% 증가시킬 것으로 예측되지만, 이 혜택이 실제 창작자들에게 돌아갈지는 의문입니다.
플랫폼의 책임과 투명성 문제
The Velvet Sundown 사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Spotify의 대응입니다. 밴드가 ‘인증 아티스트’ 지위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AI 생성 콘텐츠라는 표시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많은 청취자들이 Spotify 구독 취소를 고려한다고 밝혔고, “밀리 바닐리가 수십 년 너무 일찍 나왔다”며 과거의 립싱크 사기 사건과 비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 Reddit 사용자는 “Spotify 설명에 AI라는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게 정말 구독을 취소하게 만든다”고 분노를 표했습니다.
반면 Deezer는 Suno, Udio 등 주요 AI 음악 생성 모델로 만든 콘텐츠를 100% 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 관련 경고 문구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조적인 접근법은 플랫폼별로 AI 콘텐츠에 대한 정책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흥미롭게도 The Velvet Sundown 측은 자신들의 X 계정을 통해 “소위 ‘언론인’들이 아무런 증거 없이 AI 생성이라는 게으르고 근거 없는 이론을 계속 밀어붙인다”며 AI 사용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명확한 해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작의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The Velvet Sundown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AI가 만든 음악이라도 사람들이 즐긴다면 그것도 유효한 예술일까요? 아니면 창작자의 존재가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결정하는 걸까요?
일부에서는 이를 순전히 기술적 성취로만 바라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한 Reddit 사용자는 “솔직히 노래들이 좋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죠. 음악 그 자체의 품질과 청취 경험에만 집중한다면, 제작 과정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점입니다.
하지만 더 큰 그림에서 보면, 이는 창작 산업 전체의 생태계 변화를 의미합니다. AI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창작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 아티스트들의 설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한 가지 긍정적인 측면은 이런 논란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진짜’ 아티스트를 더 적극적으로 찾고 지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AI와 인간의 차이를 인식하게 된 청취자들이 오히려 인간 창작자의 가치를 재발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를 탐지하는 기술도 함께 발전할 것입니다. 현재 arXiv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가사 텍스트 분석을 통해 AI 생성 음악을 식별하는 기법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플랫폼들도 점차 더 정교한 탐지 시스템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국 The Velvet Sundown 사건은 우리가 맞이하게 될 AI 시대 창작 환경의 예고편과 같습니다.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활용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플랫폼의 투명성 정책, 창작자 보호 방안, 그리고 소비자의 인식과 선택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가 구별하기 어려워진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맹목적 거부가 아닌 현명한 판단력과 건전한 창작 생태계를 지키려는 의식적 노력일 것입니다.
참고자료:
- Half a million Spotify users are unknowingly grooving to an AI-generated band
- Spotify’s latest breakout band The Velvet Sundown appears to be AI-generated – and fans aren’t happy
- AI’s Impact On Music In 2025: Licensing, Creativity And Industry Survival
- AI in Music Industry Statistics 2025: Market Growth & Trends
- AI rock band’s Spotify rise fuels calls for transpar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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