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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되살린 손글씨의 역설: 사라져가는 기술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

스마트폰과 AI가 지배하는 시대에 손글씨가 오히려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대학들이 AI 표절을 막기 위해 손글씨 시험을 부활시키고 있는 지금, 과연 손글씨의 진짜 가치는 무엇일까요?

출처: Brookings

역설적 상황: AI 시대에 부활하는 손글씨

WIRED의 기자 안젤라 워터커터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기자로 일하면서 속도가 아름다움을 이기게 되었고, 이제는 키보드로 대부분의 일을 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필기 실력마저 잃을까 걱정됩니다.”

그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70%의 성인이 동료의 손글씨를 읽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45%는 자신의 손글씨조차 알아보기 힘들다고 답했습니다. 20대 손녀가 수표에 서명하는 것조차 버거워한다는 할머니의 하소연이 더 이상 개별적인 일화가 아닌 시대적 현상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ChatGPT 같은 AI가 교육 현장에 도입되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이 AI를 이용해 과제나 시험 답안을 작성하는 일이 늘어나자, 대학들이 대응책을 마련했습니다. 바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는 환경에서 손으로 직접 써야 하는 시험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블루북(Blue Books)’입니다. 파란색 표지의 얇은 시험지 책자로, 미국 대학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손글씨 시험용 답안지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의 한 제지회사는 2024년 블루북 주문량이 크게 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AI 표절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손글씨 시험이었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밝혀낸 손글씨의 숨겨진 힘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의 오드리 반 데르 미어 교수 연구팀은 36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뇌파(EEG) 연구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손글씨를 쓸 때는 뇌 전체가 활성화되는 반면, 타이핑할 때는 훨씬 제한적인 영역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손글씨를 쓸 때는 뇌의 거의 모든 부분이 활성화됩니다. 타이핑할 때보다 훨씬 광범위한 신경 네트워크가 소통하죠.” 반 데르 미어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손글씨와 타이핑 시 뇌 활성화 영역 비교
출처: PMC – 손글씨와 타이핑의 신경학적 차이

더 흥미로운 점은 손글씨가 학습과 기억과 관련된 알파파와 세타파를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이는 손글씨가 단순한 기록 수단을 넘어서 뇌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는 도구라는 것을 의미한다.

‘문자 기억상실’의 시대

중국에서는 이미 심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중국 대학생들이 키보드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한자를 손으로 쓰지 못하는 ‘문자 기억상실(Character Amnesia)’ 현상을 보입니다. 대학생의 42%가 일부 한자를 쓰지 못하고, 6%의 시간 동안은 아예 글자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는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Use it or lose it)’는 뇌과학의 기본 원리를 보여줍니다. 키보드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물리적으로 글자를 그리는 능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호주 뉴캐슬대학의 카렌 레이 박사 연구팀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아이들의 미세 운동 능력이 이전 세대보다 낮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성능 테스트는 통과했지만, 전반적인 운동 숙련도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교육 현장의 딜레마: 효율성 vs 공정성

AI 시대에 손글씨가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입니다. 학생들이 AI로 과제를 대신 시키는 것을 막으려면, 손글씨로 직접 써야 하는 시험이 유일한 대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새로운 문제가 있습니다. 『손글씨의 역사와 불확실한 미래』의 저자 앤 트루벡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교수들이 글씨가 나쁜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손글씨 실력과 사고 능력은 별개인데 말이죠.”

실제로 일부 학생들은 손글씨 때문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위험에 처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몰락에 대한 훌륭한 분석을 했더라도, 글씨가 나쁘다는 이유로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손글씨 연습하는 모습
출처: New York Post – 사라져가는 손글씨 교육

STEM 교육과 손글씨의 균형

많은 학교들이 STEM 교육을 강화하면서 손글씨 교육 시간을 줄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 그린스보로대학의 로버트 와일리 교수는 이런 접근을 경계합니다.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도 읽기와 쓰기 없이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수학자들은 문제를 적어야 하고,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메모를 해야 합니다.”

실제로 손글씨는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라 사고 과정의 일부입니다. 손으로 쓰는 과정에서 뇌는 정보를 더 깊이 처리하고, 창의적 사고를 촉진합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 방안

해답은 극단적인 선택이 아닌 균형에 있습니다. 최신 연구들은 디지털 펜과 태블릿이 전통적인 손글씨의 인지적 이점을 어느 정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압력 감지 기능과 햅틱 피드백이 있는 디지털 펜은 종이에 쓰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완전한 대체는 아닙니다. 종이와 펜의 물리적 접촉에서 오는 촉각 피드백과 미세한 저항감은 여전히 독특한 학습 효과를 제공합니다.

미래를 위한 제언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시대에도 손글씨 교육을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다음과 같은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합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손글씨와 타이핑을 모두 가르치되, 각각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깊이 있는 사고가 필요한 과제는 손글씨로, 빠른 정보 처리가 필요한 작업은 타이핑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평가 방식에서는 손글씨 실력 자체보다는 사고의 깊이와 창의성을 중시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글씨가 나쁘다고 해서 내용까지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술 개발에서는 전통적 손글씨의 인지적 이점을 살리면서도 디지털의 편의성을 결합한 도구들을 계속 발전시켜야 합니다.

AI가 인간의 많은 능력을 대체하고 있지만, 손글씨는 여전히 우리의 뇌를 활성화하고 학습을 촉진하는 독특한 도구입니다. 기술 발전과 인간 고유 능력의 균형을 찾는 것이 진정한 미래 교육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손글씨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AI 시대에도 여전히 가치 있는 인간의 능력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기술과 전통 사이의 올바른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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