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 Wrapper”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AI 모델에 간단한 인터페이스만 씌운 제품을 비하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실제로 차별화된 기술이 없다는 뜻이죠. 그런데 이런 “래퍼” 회사들이 최근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코드 에디터 Cursor는 \$29B(약 40조원), AI 검색 Perplexity는 \$20B, AI 코딩 어시스턴트 Cognition은 \$10B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래퍼치고는 너무 큰 숫자죠?

AI 엔지니어링 커뮤니티의 주요 옵저버인 swyx가 Latent Space에 발표한 글입니다. 그는 이들 기업을 “Agent Lab”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분류하며, OpenAI나 Anthropic 같은 “Model Lab”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비즈니스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두 종류의 랩이 어떻게 다른지, 왜 Agent Lab이 주목받는지 살펴봅니다.
출처: Agent Labs: Welcome to GPT Wrapper Summer – Latent Space
Model Lab은 연구에, Agent Lab은 제품에 집중한다
가장 큰 차이는 리소스를 어디에 쓰느냐입니다.
OpenAI를 보면 전체 컴퓨팅 파워 중 실제 서비스에 쓰이는 추론(inference) 비중이 28%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72%는 새로운 모델을 연구하는 데 투입되죠. ChatGPT든 API든 고객이 실제 쓰는 부분보다 연구에 2.5배 더 많은 자원을 쓰는 겁니다.
직원 구조도 마찬가지입니다. Model Lab에서는 모델 연구원이 응용 AI 엔지니어보다 약 2배 높은 연봉을 받습니다. 회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돈의 흐름이 말해주죠.
반면 Agent Lab의 접근은 정반대입니다. Cursor를 예로 들어볼까요. 이들은 처음 2년 동안 자체 모델 연구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VSCode를 포크해서 사용자들이 코딩할 때 정확히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관찰했습니다. 제품을 먼저 만들고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야 자체 모델 연구를 시작했죠. 순서가 완전히 다릅니다.
성과로 돈을 받는다
가격 정책도 완전히 다릅니다.
Model Lab은 토큰 단위로 과금합니다. “이번 달에 100만 토큰 썼으니 \$20입니다” 식이죠. 문제는 경쟁사들도 같은 방식으로 가격을 책정하니 치열한 가격 경쟁에 휘말린다는 겁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추론 비용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ChatGPT Plus의 월 \$20 구독료에도 사람들은 “비싸다”고 불평하죠.
하지만 Agent Lab은 다르게 접근합니다. “이 작업을 완성했으니 얼마”처럼 성과 기반으로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Factory AI는 월 \$2,000를 받습니다. 비싸 보이지만 실제로 인간 개발자 한 명을 대체하는 성과를 낸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이 되죠. 토큰 몇 개 썼는지가 아니라 실제 비즈니스 가치로 값을 매기는 겁니다.
사람을 믿는가, 모델을 믿는가
자율성에 대한 철학도 다릅니다.
Model Lab은 완전 자율을 목표로 합니다. AGI를 만들려면 사람 개입 없이도 몇 시간씩 스스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죠. 그래서 도구나 시스템과의 연결(하네스; harness)도 가볍게 유지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 모델 버전이 나오면 훨씬 똑똑해져서 복잡한 하네스가 필요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모델의 발전을 믿는 겁니다.
Agent Lab은 정반대입니다. 지금 당장의 속도와 정확성이 중요합니다. 사용자가 매 단계를 확인하고 개입할 수 있게 만들고, 필요하다면 몇 달마다 하네스를 통째로 다시 작성합니다. 다음 모델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있는 모델로 최대한 뽑아내는 거죠.
Model Lab도 변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Model Lab들도 최근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OpenAI의 Sam Altman은 최근 발표에서 처음으로 “AI Cloud”와 “서드파티 앱”을 강조했습니다. ChatGPT를 모든 기능을 가진 슈퍼앱으로 키우는 대신, 다른 개발자들이 OpenAI 위에서 앱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선언입니다.
Anthropic은 더 과감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350B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50B짜리 데이터센터 건설을 발표했고, Claude 개발자 플랫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Cloudflare는 AI 인프라 회사 Replicate을 인수했습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날까요? 간단합니다. 스택을 위로 올려서 앱을 만들기보다 아래로 내려서 칩과 데이터센터를 만드는 게 규모를 키우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좋은 모델이 여러 개 있으니 누군가는 이것들을 잘 조합해서 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바로 Agent Lab이 하는 일이죠.
RL 시대가 Agent Lab에 유리하다
기술적인 변화도 Agent Lab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AI는 주로 인터넷의 모든 텍스트를 학습하는 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를 사전학습(pretraining)이라고 하죠. 하지만 이제 학습할 데이터가 바닥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있는 글은 다 읽었으니까요.
이제는 강화학습(RL) 시대입니다. 특정 작업을 반복하면서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방식이죠. 예를 들어 코딩 에이전트라면 실제 코드를 짜고, 테스트하고, 고치는 과정을 수천 번 반복하면서 학습합니다.
이 방식은 Agent Lab에게 유리합니다. 특정 도메인(코딩, 검색, 고객 응대 등)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Cursor는 최근 발표에서 오픈소스 모델에 자체 사후학습을 하면 최고의 프론티어 모델과의 격차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무엇이 달라질까
“Agent Lab”이라는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비즈니스 전략이 이름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Model Lab이 모델을 만들어 판다면, Agent Lab은 에이전트를 만들어 팝니다. 단순히 “새롭다”는 것만으로는 차별화가 안 됩니다.
1년 전만 해도 “GPT Wrapper”는 비난의 표현이었습니다. 기술력 없이 남의 모델 갖다 쓴다는 뜻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OpenAI와 Anthropic 같은 주요 Model Lab들이 공식적으로 개발자 플랫폼을 강조하고, Cursor 같은 Agent Lab이 수십조원대 밸류에이션을 받는 시대가 왔습니다.
좋은 모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모델로 실제 문제를 푸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걸 시장이 인정하기 시작한 겁니다. Agent Lab의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참고자료:
- Why GPT Wrappers Are Good, Actually – Latent Space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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