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하게 경쟁하는 두 회사가 같은 날, 판박이 구조의 사업체를 동시에 발표했습니다.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AI 업계 전체가 비슷한 벽에 부딪혔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2026년 5월 4일, Anthropic과 OpenAI는 각각 기업용 AI 도입을 전담하는 합작법인 설립을 발표했습니다. Anthropic은 Blackstone, Hellman & Friedman, Goldman Sachs 등과 손잡고 기업가치 15억 달러 규모의 새 회사를 만들었고, OpenAI는 같은 날 ‘The Development Company’라는 이름으로 100억 달러 규모의 벤처를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두 회사 모두 AI 모델을 만드는 것을 넘어, 그 모델을 실제 조직에 심어주는 역할을 전문적으로 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출처: Building a new enterprise AI services company with Blackstone, Hellman & Friedman, and Goldman Sachs – Anthropic
AI를 도입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가
모델은 있습니다. API도 있고, 문서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조직에 AI를 붙이는 작업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Anthropic CFO Krishna Rao는 “Claude에 대한 기업 수요가 어떤 단일 납품 방식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고 밝혔습니다. 기술을 쓰고 싶은 회사는 많은데, 막상 도입을 실행할 내부 역량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역 병원 네트워크, 중견 제조업체, 지역 금융기관 같은 조직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글로벌 대기업처럼 전담 AI 팀을 꾸리거나 Accenture 같은 대형 컨설팅사를 쓸 여력이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이 아닙니다. 병원의 경우를 예로 들면, 의사들이 하루 중 어디서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지, 어떤 워크플로우가 실제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아는 건 의사들 자신입니다. 그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AI를 붙이면 쓰이지 않거나, 오히려 일이 늘어납니다.
현장에 엔지니어를 보내는 방식
두 합작법인이 공통으로 채택한 접근법이 있습니다. Palantir가 오래전부터 써온 ‘전방배치 엔지니어(Forward-Deployed Engineer)’ 모델입니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납품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엔지니어가 고객 조직 안에 들어가 함께 일하며 시스템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Anthropic의 새 회사는 이렇게 작동합니다.
- 소규모 팀이 고객사에 들어가 Claude가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점을 찾습니다.
- Anthropic Applied AI 엔지니어들이 합류해 각 조직의 운영 방식에 맞춘 Claude 기반 시스템을 개발합니다.
- 단기 납품이 아닌 장기적 지원을 전제로 고객과 관계를 이어갑니다.
단순히 도구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조직이 AI를 실제로 쓸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붙어있겠다는 구조입니다.
기술 경쟁 다음 단계는 배치 경쟁
이번 발표는 AI 산업의 경쟁 구도가 조용히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OpenAI와 Anthropic의 경쟁은 주로 벤치마크와 모델 성능 위주였습니다. 더 똑똑한 모델을 더 빨리 내놓는 쪽이 유리했죠.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모델 자체의 격차가 좁혀지면서, 실제 조직에 얼마나 잘 심을 수 있느냐가 새로운 경쟁 축이 되고 있습니다. 두 회사가 같은 날 같은 구조의 회사를 만든 건, 그 인식이 이미 업계 전반에 공유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배포 측면에서 Microsoft는 여전히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Copilot을 Office 제품군에 직접 통합하는 방식은 별도 도입 과정 없이 수백만 기업에 닿을 수 있는 경로니까요. Anthropic과 OpenAI가 선택한 현장 밀착형 모델은 그와 다른 접근입니다. 더 많은 자원이 들지만, 조직의 핵심 운영에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습니다.
결국 AI를 잘 쓰는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의 차이는, 어떤 모델을 선택했느냐보다 그 모델을 실제 업무에 얼마나 잘 녹여냈느냐에서 점점 더 많이 갈리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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