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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웹페이지를 읽고 있을 때, 글자가 당신의 시선을 따라 선명해지고, 시간대에 따라 폰트가 바뀌며, 읽는 속도에 맞춰 중요한 부분이 강조된다면 어떨까요? 이것은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AI가 타이포그래피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읽는 스마트 폰트의 등장
세계 최대 폰트 회사 중 하나인 Monotype은 헬베티카, 푸투라, 길 산스 등 25만 개의 폰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최근 발표한 2025년 ‘Re:Vision’ 트렌드 보고서는 타이포그래피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AI는 독자의 감정과 심리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타이포그래피를 제공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시선 추적 기반 반응형 텍스트: 사용자가 특정 부분을 보면 해당 텍스트가 선명해지고, 시선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부드럽게 변화합니다.
환경 적응형 폰트: 시간대와 조명 조건에 따라 자동으로 폰트가 변경되어 최적의 가독성을 제공합니다.
개인화된 읽기 경험: 사용자의 읽기 속도를 분석해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거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폰트 크기와 간격을 조정합니다.
Monotype의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Charles Nix는 “AI를 통해 사람들을 그들이 필요로 하는 폰트와 연결하는 것”이 핵심 목표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Monotype은 2015년부터 폰트 인식 엔진을 훈련시켜왔으며, 이미 WhatTheFont와 같은 AI 기반 폰트 식별 도구를 성공적으로 상용화했습니다.

업계의 엇갈린 반응: 기회 vs 위험
하지만 모든 전문가가 이런 미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스튜디오 Dalton Maag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Zeynep Akay는 더욱 신중한 접근을 주장합니다.
“마치 우리의 삶, 직업, 창작 능력이 덧없다고 믿도록 세뇌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Akay는 말합니다. 그녀는 AI가 모든 인간의 지적 활동을 대체하는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며, 그 대가로 얻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흥미롭게도, 양측 모두 AI의 보조적 활용에는 동의합니다. 커닝 테이블 작성, OpenType 기능 개발, 폰트 문제 진단 같은 반복적이고 기술적인 작업에서 AI의 도움을 받는 것은 창의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0년 전 산업화와 현재의 데자뷰
이런 논쟁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20세기 초,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가 예술과 타이포그래피에 미칠 영향을 놓고 창작자들이 격론을 벌였던 Deutscher Werkbund(독일 공예가 연맹)의 상황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당시에도 일부는 대량생산을 거부했고, 다른 일부는 이를 적극 수용해 바우하우스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이 제기했던 질문들 – 타이포그래피가 종이에만 머물 것인가, 보편적 폰트가 가능한가 – 은 결국 실질적인 답을 찾지 못했지만, 제조와 디자인 과정의 효율성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Charles Nix는 “35년 전 컴퓨터가 디자인에 도입될 때도 디자이너를 대체할 것이라는 비슷한 우려가 있었지만, 지난 35년간 컴퓨터로 디자인해온 우리의 창의성은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현실적 활용: 지금 당장 가능한 것들
과장된 미래 전망과 달리, 현재 실제로 작동하는 AI 타이포그래피 도구들은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주요 사례로는:
폰트 식별 도구: Monotype의 WhatTheFont처럼 이미지에서 폰트를 인식하는 기술
TypeMixer.xyz: 기존 폰트들을 조합해 새로운 변형을 만드는 실험적 도구
변수 폰트(Variable Fonts): 하나의 폰트 파일에서 굵기, 폭, 기울기 등을 연속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기술
2024년 Monotype의 연구에 따르면, 창작자들은 폰트 선택을 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여기고 있으며, AI 도구에 대해서는 보조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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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중심적 시각을 넘어서
흥미로운 관점 중 하나는 AI 타이포그래피의 필요성이 서구권보다는 비라틴 문자권에서 더 절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Charles Nix는 “서구 중심적 관점에서는 풍부한 폰트 선택권이 있지만, 비라틴 문자의 경우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라며, “주변부가 AI의 필요성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한글, 아랍어, 힌디어 등의 복잡한 문자 체계에서는 자동화된 폰트 생성과 최적화가 더욱 가치있을 수 있습니다.
창의성의 본질에 대한 질문
결국 이 모든 논의의 핵심은 창의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Zeynep Akay는 “창의성이 가치있는 이유는 쉽고 빠르지 않기 때문이며, 전통적으로 노력과 고민, 위험을 감수한 결과”라고 강조합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AI가 기계적 작업을 대신해줌으로써 창작자들이 더 본질적인 창의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워드프로세서가 타이핑의 번거로움을 덜어준 것처럼 말입니다.
미래를 향한 균형잡힌 접근
현재 AI 타이포그래피는 1990년대 말 닷컴 버블과 유사한 상황에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 인터넷 기술은 실제 소비자 니즈와 연결되지 못해 거품이 꺼졌지만, 이후 진정한 문제를 해결할 때 다시 부상했습니다.
양측 전문가들은 AI 분야의 조정이 실제로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동의합니다. 과도한 벤처캐피탈의 관심과 성급한 자동화 시도를 걸러내고, 진정으로 가치있는 활용 방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는 것입니다. 1965년의 타이포그래피와 2025년의 타이포그래피가 근본적으로 다르듯,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을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AI 타이포그래피의 미래는 기술 자체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효율성과 창의성, 자동화와 인간성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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