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와 대화하다 보면 가끔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나눈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받거나,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맥락을 아는 것처럼 반응할 때죠. 마치 원래 나를 알던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자연스러움 자체가 세심하게 설계된 결과였습니다.

2026년 6월, Anthropic의 최신 플래그십 모델 Claude Fable 5를 구동하는 시스템 프롬프트가 GitHub의 공개 저장소에 올라왔습니다. 3,826줄 분량의 이 문서를 Analytics Vidhya가 항목별로 해부한 글을 냈습니다.
출처: Claude Fable 5’s Leaked System Prompt Decoded – Analytics Vidhya
해킹이 아니라 “추출”
먼저 이게 정확히 뭔지부터 짚어야 합니다. 시스템 프롬프트는 사용자의 첫 마디가 모델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덧붙는 지시문입니다. 톤과 형식, 거절 기준, 쓸 수 있는 도구, 성격, 한계까지 이 안에서 정해집니다. Anthropic이 학습 단계에서 모델에 깊은 가치관을 심어 넣는다면, 이 프롬프트는 그 위에 얹혀 특정 제품(이 경우 Claude 앱)에 맞게 행동을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번 유출본의 출처는 55,000개 넘는 스타를 받은 공개 GitHub 저장소입니다. 해킹으로 빼낸 게 아니라, 모델을 구슬려 자기 지시문을 그대로 읊게 만드는 방식으로 “추출”된 겁니다. 다만 이게 Anthropic이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버전은 아닙니다. Anthropic은 짧은 핵심 원칙만 담은 “코어” 프롬프트를 공개하는데, 이번에 유출된 건 메모리와 도구, 아티팩트까지 담긴 훨씬 방대한 “전체 제품” 프롬프트입니다.
문서는 19만 토큰 예산으로 시작하는, 법률 문서에 주석을 단 듯한 깊게 중첩된 XML 구조입니다.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뉘는데, Claude가 누구인지(정체성, 거절, 톤, 웰빙)를 정하는 부분과 Claude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메모리, 도구, 아티팩트, 검색)를 정하는 여러 블록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기억하지만 티 내지 않는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메모리 관련 지시입니다. Claude는 사용자의 과거 대화에서 개인화된 맥락을 끌어다 씁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문서가 상당히 공을 들입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당신의 메모리에 따르면” 같은 표현은 아예 쓰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Claude는 메모리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되, 그 선택 과정을 사용자가 묻지 않는 한 설명하거나 굳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의도는 명확합니다. 메모리가 “감시”처럼 느껴지지 않고 “연속성”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겁니다. “예전에 말씀하신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매번 알려주는 모델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그냥 아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모델은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지죠. 결국 자연스러움도 결과물이 아니라 설계의 산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공들여 지어진 방
문서에서 가장 촘촘하게 짜인 부분은 거절 처리 규칙입니다. Claude는 사실관계라면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룰 수 있지만, 구체적인 위해로 이어질 수 있는 지점에서는 선을 긋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동 안전 관련 규칙이 문서 전체에서 가장 세심하게 다뤄집니다.
무기나 폭발물 관련 요청은 의도가 아무리 선해 보여도 기술적 세부사항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불법 약물은 “피해 감소” 명목이라도 투여량이나 제조법을 알려주지 않되, 생명을 구하는 정보는 예외로 허용됩니다. 악성코드도 “교육 목적”이라는 명분과 무관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에 대해서는 허구적 창작은 허용하되, 공인의 이름을 걸고 가짜 발언을 지어내는 건 허용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원칙 하나는, 모델이 스스로 어떤 요청을 재구성해서 받아들일 만하게 만들려는 순간을 포착하면, 그 재구성 시도 자체를 거절 신호로 삼는다는 겁니다. 즉 “이렇게 바꿔 말하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그게 바로 멈춰야 할 지점이라는 뜻입니다.
정체성보다 규칙이 먼저 나온다
한 가지 구조적으로 눈에 띄는 지점은, “이 어시스턴트는 Anthropic이 만든 Claude”라는 정체성 고지가 문서의 꽤 늦은 지점에야 등장한다는 겁니다. 도구 사용법, 검색과 인용 규칙, 행동과 안전 원칙이 먼저 자리를 잡은 뒤에야 정체성 관련 내용이 나옵니다.
이 순서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프론티어 AI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신비로운 하나의 정신이라기보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항목별로 꼼꼼히 정리한 규칙집에 가깝다는 겁니다. 물론 이건 비공식적으로 유출된 문서이고 Anthropic이 공식 확인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번 유출이 보여주는 건, 우리가 매일 대화하는 AI의 자연스러운 말투 하나하나가 실은 그만큼 세밀하게 설계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참고자료: asgeirtj/system_prompts_leaks – GitH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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