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코미디 작가들에게 ‘마음의 오젬픽’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흥미로운 비유처럼, 창작 분야에서 AI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진정한 창의성의 기준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최근 Drew Breunig의 블로그에서 소개된 영국 코미디 작가 Madeleine Brettingham과의 인터뷰는 AI 시대 창작자들이 직면한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Chief Word Officer 뉴스레터에 실린 이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창작 분야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과 창작자들의 대응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코미디 업계의 AI 수용 현실: ‘마음의 오젬픽’
Brettingham은 현재 코미디 업계의 AI 수용 현상을 “마음의 오젬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오젬픽은 원래 당뇨병 치료제였지만 체중 감량 효과가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약물입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죠. AI 도구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AI를 사용하는 것이 받아들여질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규범이 명확해질 때까지는 누가 실제로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실제로 코미디 작가들 사이에서는 “5년 안에 AI가 나를 대체할 것 같아서 재교육을 받아야겠다”는 반응부터 “AI는 위협이 아니다. 재미있을 수가 없다”는 반응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불안감을 농담으로 처리하려고 하는데, 이는 코미디 작가들이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합니다.
MIT Technology Review가 진행한 연구에서도 이런 현실이 확인됩니다. 20명의 전문 코미디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참가자들은 AI가 생성한 농담에 대해 “재미있지만 자랑스럽지는 않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참가자는 AI가 만든 농담을 “1950년대 크루즈선 코미디 같은데, 인종차별은 좀 덜한”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AI가 만드는 새로운 경쟁 구도: 뻔한 것의 빠른 생산
Brettingham의 가장 통찰력 있는 관찰 중 하나는 AI가 “다른 사람들도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매우 빠르게 보여줌으로써, 진짜 미개척 창작 영역이 어디인지를 더 명확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AI는 평균적이고 뻔한 것들로 향하지만, 훌륭한 글쓰기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을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인터뷰어의 지적에 그녀는 동의하며, 이것이 소셜미디어 시대와 비슷한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했을 때 풍자 프로그램용 농담을 쓸 때 수백만 명이 X나 인스타그램에서 이미 말한 것과 다른 것을 말해야 했던 것처럼, LLM은 진입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품질의 기준은 높일 것”이라고 그녀는 예측했습니다.

이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사진 업계에 미친 영향과 유사합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전문 사진작가들은 더 높은 해상도와 아이폰으로는 불가능한 기법들로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ChatGPT로 무장한 대중들도 마찬가지 현상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 리스크와 몸의 감각
Brettingham이 강조한 또 다른 중요한 포인트는 코미디에서 “리스크”와 “몸의 감각”의 중요성입니다. 그녀는 때때로 다른 사람이 제안한 농담이 기술적으로는 좋지만 “입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전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내 몸이 그걸 거부하는 것 같다”며 “외부 소스에서 온 아이디어를 접목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누군가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사실 자체가 재미의 일부라고 그녀는 지적합니다. “로봇 찰리 채플린이 재미있을까? 슬랩스틱 로봇이 가능할까? 로봇은 신경 쓰지 않으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AI가 창작할 수 없는 영역을 명확히 했습니다.
“사람들은 로봇 올림픽을 보지 않는다. 체스 컴퓨터 세계 챔피언십도 보지 않는다. 체스 세계 챔피언십을 보는 이유는 자신들과 같은 삶의 여정을 걷고 같은 것들과 씨름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설명은 AI 시대 퍼포먼스의 본질을 꿰뚫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예(virtuosity)는 관객이 연주자가 감수하는 위험을 인지할 수 있을 때만 성립됩니다. 무대에 올라가서 재생 버튼만 누르는 DJ는 기예를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수많은 잘못된 건반들 사이에서 완벽하게 손가락을 놓는 피아니스트는 의심할 여지없이 기예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농담의 사회적 신호 기능과 AI의 한계
Brettingham은 “농담은 사회적 지위를 신호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며, AI가 쉽게 만들 수 있는 패러디나 아빠 개그 같은 유형의 농담들은 그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풍부한 것들은 가치가 낮아질 수 있다”며 “AI가 할 수 있는 특정 종류의 패러디는 아마 극도로 진부해질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실제로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에서도 이런 한계가 확인되었습니다. OpenAI와 구글의 인기 AI 모델들은 단순한 작업(독백 구성이나 초안 작성)에는 효과적이었지만, 독창적이고 자극적이며 무엇보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AI의 안전 필터가 폭력적이거나 인종차별적인 응답을 방지하는 동시에 코미디 창작에 흔한 공격적이거나 성적으로 암시적인 농담, 블랙 유머 등을 생성하는 것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AI 시대 창작자를 위한 생존 전략
그렇다면 AI 시대에 창작자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Brettingham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살아있음에 집중하라.”
“나는 경쟁적인 사람이고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한다. 내게는 AI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AI를 압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결국 항상 좋은 글쓰기를 만들어온 것들에 더욱 집중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입니다:
- 독특한 관점: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
- 독창적인 통찰: 기존에 없던 새로운 깨달음을 제공하는 것
- 삶의 경험: 실제로 살아온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 살아있는 목소리: 복제할 수 없는 개인만의 고유한 표현 방식
- 공감대: 같은 것들과 씨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인간적 연결
“이 모든 것들은 AI 데이터셋 밖에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그녀의 지적이 핵심입니다.
나가며
AI는 분명히 창작 분야의 판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미디 작가 Madeleine Brettingham의 통찰처럼, AI는 뻔한 것들을 빠르게 생산함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창의성이 무엇인지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작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AI를 두려워하거나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 관점을 개발하며, 무엇보다 “살아있는” 목소리를 키워나가는 것이 AI 시대 창작자들의 핵심 전략이 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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