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파산 직전까지 간 AI 스타트업이 할리우드 거물들의 도움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AI 혁명을 이끌고 있습니다.

레이디 가가의 온실에서 시작된 기업 인수극
2024년 2월, 레이디 가가의 말리부 저택에서 열린 파티장에서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졌습니다. 냅스터 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초대 사장인 숀 파커(Sean Parker)의 지인인 프렘 아카라주(Prem Akkaraju)가 한 투자자로부터 충격적인 제안을 받았습니다. “Stability AI를 인수해서 할리우드 친화적인 AI 모델로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당시 Stability AI는 2022년 Stable Diffusion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경영난으로 “며칠 안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질”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창업자 에마드 모스타크(Emad Mostaque)의 관리 부실로 인한 재정적 위기였죠.
아카라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불과 한 달 후인 3월, 모스타크가 투자자들의 압박으로 회사를 떠났고, 아카라주와 파커가 각각 CEO와 이사회 의장으로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화려한 부활까지
Stability AI의 몰락은 눈 덩이처럼 커졌습니다. 2023년 포브스의 폭로 기사가 도화선이었습니다. 모스타크의 학력 허위 기재, 투자자들에 대한 과장된 사업 설명, 그리고 아마존 웹 서비스(AWS)에 대한 막대한 미지급금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회사의 재정 상태는 참담했습니다. 2023년 10월 기준으로 은행 잔고는 겨우 400만 달러였지만, AWS와 구글 클라우드, CoreWeave에 연간 9,900만 달러의 클라우드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운영비와 인건비로 5,300만 달러가 추가로 필요했죠.
핵심 연구진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고, 주요 투자사인 Coatue와 Lightspeed의 임원들도 이사회에서 물러났습니다.
파커와 아카라주는 놀라운 구조조정을 해냈습니다. 8,000만 달러의 신규 투자를 유치하고, 공급업체들로부터 1억 달러의 부채 탕감을 받아냈으며, 3억 달러의 미래 의무를 면제받았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적인 부활이었죠.

터미네이터 감독이 AI 회사 이사가 된 아이러니
가장 놀라운 반전은 제임스 카메론의 합류였습니다. 《터미네이터》로 AI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그가 AI 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한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는 교훈을 얻은 결과입니다”라고 파커는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카메론은 10년 전 파커와 아카라주의 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스크리닝 룸’을 강력히 반대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2020년 웨타 디지털(Weta Digital)을 인수한 후 관계가 회복됐습니다. 웨타는 《반지의 제왕》, 《아바타》 시리즈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세계 최고 수준의 VFX 회사입니다.
카메론은 “30년 전 CGI의 최전선에 있었고, 지금은 생성형 AI와 CGI 이미지 생성의 융합이 다음 물결”이라며 합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할리우드가 AI를 받아들이는 방식
할리우드의 AI 도입은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2022년 이후 미국에서 제작되는 영화와 TV 프로그램이 40% 감소한 상황에서, AI는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례들
Netflix의 첫 AI 활용: 넷플릭스는 아르헨티나 SF 드라마 《El Eternauta》에서 건물 붕괴 장면을 생성형 AI로 제작했습니다. 테드 사란도스 공동 CEO는 “제작 속도가 10배 빨라지고 비용이 대폭 절감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아마존의 《House of David》: 조나던 어윈 감독은 그리스에서 촬영하던 중 AI 도구를 발견했습니다. “제작 디자이너가 거의 실시간으로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것을 보고 마법사 같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그는 아마존에 AI 활용 계획서를 제출했고, 승인을 받아 산불 장면을 AI로 제작했습니다. 같은 장르의 다른 프로그램 대비 3분의 1 예산으로 2배 빨리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Runway와 라이온스게이트의 역사적 계약: 2024년 9월, AI 스타트업 Runway가 라이온스게이트와 업계 최초의 대형 스튜디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라이온스게이트의 영화 카탈로그를 학습 데이터로 제공받아 전용 AI 도구를 개발하는 내용입니다.

업계 분위기의 변화
루마(Luma) CEO 아미트 제인은 “작년 로스앤젤레스와 올해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합니다. “작년에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자, 개념 증명을 해보자’는 식으로 미루는 분위기였다면, 올해는 완전히 다른 톤입니다.”
구글 딥마인드 출신이 설립한 Moonvalley는 십여 개의 주요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자사의 최신 모델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Stability AI의 새로운 전략
아카라주는 근본적인 전략 변화를 단행했습니다. OpenAI나 구글과 경쟁하며 최첨단 모델을 개발하는 대신, 기존 모델 위에서 작동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막대한 컴퓨팅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었죠.
“우리의 차별화 포인트는 창작자를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이사회에 있는 다른 AI 회사는 없습니다”라고 아카라주는 강조합니다.
회사는 이제 할리우드를 위한 SaaS(Software-as-a-Service) 기업으로 변신했습니다. 영화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제작자들이 이미 사용하는 도구를 AI로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장에서의 실제 활용
Stability AI의 기술 책임자 한노 바세(Hanno Basse)는 2D 이미지를 3D로 변환하는 기능을 시연했습니다. 뒷마당 사진 한 장을 입력하면 AI가 깊이를 추정해 몰입감 있는 3D 환경을 만들어냅니다. 감독들은 드롭다운 메뉴에서 카메라 움직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아바타》 작업에 참여한 베테랑 VFX 전문가 롭 레가토(Rob Legato)는 3월에 회사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과거 수백 시간이 걸리던 로토스코핑(영상에서 특정 부분을 프레임별로 추출하는 작업) 작업을 AI가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자리 변화에 대한 엇갈린 전망
AI 도입의 가장 큰 우려는 일자리 감소입니다. 업계 리더들은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카메론은 “VFX 회사 아티스트들이 ‘대체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는다면 AI 모델에 밀려서가 아니라 일 자체가 줄어들어서일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카라주는 ATM 도입 사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1980년대 ATM이 도입될 때 은행 창구 직원들이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창구 직원 일자리가 이전보다 많아졌고, 인플레이션을 고려해도 평균 급여가 높아졌습니다.”
싱가포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CraveFX의 공동창업자 다비에 윤은 “AI는 소규모 스튜디오가 대예산급 비주얼을 구현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며 “최종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AI가 아니라 아티스트”라고 강조합니다.
흥미롭게도 아카라주가 자주 인용하는 ATM 사례에서 은행 창구 직원 수는 2015년을 정점으로 실제로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기술 낙관론자들이 언급하지 않는 부분이죠.
현재의 한계와 미래 가능성
현재 AI 기술은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텍스트-이미지 생성기는 마케팅 에이전시에는 유용하지만, 장편 영화에 필요한 품질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익명의 영화 제작자는 “넷플릭스 영화 작업 중 AI로 생성한 장면 하나를 사용하려 했는데, 4K 해상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품질 관리에서 반려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일관성도 큰 문제입니다. 같은 프롬프트를 10번 입력하면 10가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카메론은 “VFX 워크플로우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며 “더 높은 해상도, 반복 가능성, 제어 가능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프리비즈(사전 시각화) 과정에서는 이미 AI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제작자들이 AI를 활용해 촬영 전 장면을 구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변화하는 산업 생태계
AI 금기가 서서히 풀리고 있습니다. 2024년 영화계 거물 타일러 페리는 AI 동영상 생성 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보고 애틀랜타 스튜디오 확장 계획(8억 달러 규모)을 중단했습니다. OpenAI의 Sora 같은 도구들이 텍스트 프롬프트만으로 놀라운 품질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일자리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입니다.
동시에 주요 스튜디오들은 AI 전략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처음으로 생성형 AI 최종 장면을 원본 시리즈에 사용했다고 공식 발표했고, 이것이 제작 속도를 10배 향상시키고 비용을 극적으로 절감했다고 밝혔습니다.
새로운 창작의 시대
Stability AI의 변신은 단순한 기업 구조조정을 넘어 전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상징합니다. 범용 AI 도구에서 특화된 솔루션으로, 기술 중심에서 창작자 중심으로의 전환이 핵심입니다.
파커는 “오픈소스 원칙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하며 “창작자와 지적재산권에 대한 존중”을 강조합니다. 냅스터와 초기 소셜미디어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설명입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Getty Images의 저작권 침해 소송은 영국에서 일부 철회됐지만 미국에서는 계속되고 있고, 핵심 인재들의 이탈로 인한 기술적 공백도 메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혁명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스크린에서 보는 무너지는 건물, 타오르는 숲, 수많은 군중들 중 상당수가 이미 키보드 앞에 앉은 한 사람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Stability AI의 드라마틱한 변신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할리우드의 AI 혁명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참고자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