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검색 플랫폼 Perplexity가 금융 전문가들의 성역으로 여겨지는 Bloomberg Terminal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결국 백기를 든 사건이 AI 업계에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업의 전략 수정을 넘어서, AI 기술이 전문 분야로 확장할 때 직면하게 되는 근본적인 한계와 과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출처: CompoundingAI 테스트 결과
야심찬 도전의 시작
Perplexity의 CEO 아라빈드 스리니바스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자사 플랫폼을 “대중을 위한 Bloomberg Terminal”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비전은 명확했습니다. 연간 3만 달러(약 4천만 원)에 달하는 Bloomberg Terminal의 고비용 구조를 깨뜨리고, 월 20달러만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금융 데이터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죠.
Perplexity는 이러한 목표를 위해 다양한 금융 기능들을 출시했습니다. 투자 필터링을 위한 주식 스크리너, 상장 기업의 실적 발표 대본 생성, 종합적인 기업 프로필 작성, 실시간 주식 데이터와 시장 요약을 보여주는 라이브 대시보드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SEC 서류에서 직접 데이터를 추출하여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기능은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Bloomberg Terminal의 견고한 아성
하지만 Bloomberg Terminal이 40년 가까이 금융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Bloomberg Terminal은 단순한 데이터 제공 플랫폼이 아닙니다. 실시간 금융 데이터, 뉴스, 분석 도구, 거래 기능까지 통합된 종합 솔루션이며, 무엇보다 정확성과 신뢰성에서 업계 최고 수준을 자랑합니다.
Bloomberg는 전 세계 증권거래소, 은행, 브로커, 뉴스룸 등 신뢰할 수 있는 1차 소스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는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칩니다. 현재 전 세계 21만 6천 명 이상의 금융 전문가들이 이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입니다.
치명적인 정확성 문제
Perplexity의 금융 기능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사용자들은 곧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데이터 정확성의 문제였습니다.
AI 플랫폼 CompoundingAI가 실시한 테스트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인도의 광학 및 디지털 솔루션 기업인 Sterlite Technologies(STLTECH)의 특수관계자 거래(RPT) 대시보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Perplexity는 겉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 대시보드를 생성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니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STL Inc(미국)와의 RPT를 1,355크로르 루피로 표시했지만, 실제 SEBI 서류상 집행된 금액은 34.8크로르 루피에 불과했습니다. 1,355크로르는 단순히 감사위원회가 승인한 한도액이었을 뿐이었죠. 더 심각한 것은 이미 분할된 STL Networks Ltd라는 존재하지 않는 기업을 1,456크로르 루피의 RPT와 함께 포함시킨 것이었습니다.
출처: 사용자 피드백 스크린샷
또 다른 테스트에서는 Deepak Fertilisers라는 인도 상장 기업의 재무 수치를 요청했을 때, Perplexity는 7만 4,854라크 루피의 건설 중인 자산(CWIP)을 누락하고, 3만 9,521라크 루피의 리스 자산을 무시한 채, 이를 모두 유형자산(PPE)에 포함시켜 1억 2만 7,134라크 루피를 과대계상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
이러한 문제들이 불거지자 업계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한 투자 전문가는 “실제 투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Bloomberg 대비 가장 기본적인 기능조차 부족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볼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벤처 캐피탈리스트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스리니바스의 발언에 대해 두 가지 핵심 개선사항을 제시했습니다. “이 분야를 제대로 서비스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셋을 소싱하기 시작해야 하고, 수학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면 수학적 오류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더욱 근본적인 지적도 있었습니다. “Bloomberg를 대체하려는 기업들은 중요한 기본 원칙을 잘못 이해한다. 금융 고객들은 Bloomberg보다 20% 더 나은 서비스라면 2배 더 지불할 의향이 있지만, 비용에 관계없이 20% 떨어지는 서비스는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분석이었습니다.
CEO의 솔직한 인정
결국 스리니바스 CEO는 자신의 이전 발언을 철회했습니다. “Bloomberg Terminal의 대안으로 포지셔닝한 것이 불필요했을 수도 있고, Terminal에 대한 나의 이해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이는 AI 업계에서 보기 드문 솔직한 자성의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매일 불만을 제기하며 기능과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은 좋은 것을 출시했고 계속 개선해 나갈 궤도에 있다는 신호”라며, 플랫폼 개선, 특히 정확성 향상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AI 산업이 배워야 할 교훈
이번 Perplexity 사건은 AI 업계 전반에 여러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첫째, 정확성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금융과 같은 전문 분야에서는 작은 오류도 수십억 달러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AI의 환각(hallucination) 문제는 일반적인 검색에서는 용인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전문 분야에서는 치명적입니다.
둘째, 기존 산업 표준을 대체하는 것의 어려움입니다. Bloomberg Terminal이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지배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능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와 검증된 데이터 품질, 그리고 전문가들의 워크플로우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과대광고의 위험성입니다. AI 기업들이 빠른 성장과 투자 유치를 위해 성급한 마케팅을 펼치다가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특히 B2B 시장에서는 한 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미래를 향한 현실적 접근
그렇다면 AI가 전문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점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기존 표준을 완전히 대체하려 하기보다는, 특정 기능에서 확실한 가치를 증명하고 단계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현명합니다.
또한 데이터 품질에 대한 절대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AI 모델의 성능 개선만큼이나 데이터 소싱, 검증, 정제 과정에 대한 투자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용자 피드백에 대한 겸손한 수용입니다. 스리니바스 CEO가 보여준 것처럼, 문제를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자세가 장기적으로는 더 큰 신뢰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결론: 실패에서 배우는 지혜
Perplexity의 Bloomberg Terminal 도전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는 결코 의미없는 실패가 아닙니다. 이 사건을 통해 AI 업계는 전문 분야 진출 시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들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AI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적 우수성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확성, 신뢰성, 그리고 사용자의 실제 니즈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스리니바스 CEO가 말했듯이, “금융 제품들이 비싸고, 사용자 경험이 좋지 않으며, 세련미가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의 장점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왜 그 시스템이 오랫동안 살아남았는지를 이해하고, 그 장점들을 유지하면서도 단점들을 개선해 나가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Perplexity의 다음 행보가 AI 업계 전체에 또 다른 교훈을 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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