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hatGPT와 GitHub Copilot 같은 AI 도구들이 코딩 분야에 혁신을 가져오면서,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AI로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봤는데, 모든 프로그래머가 곧 실업자가 될 것”이라며 AI 만능론을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AI 도구는 전혀 쓸모없다”며 완전히 거부하는 입장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 시각은 AI 기술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미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다른 분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번역 분야입니다.

구글 번역의 놀라운 발전, 그런데 번역사는?
구글 번역은 2016년 신경망 기반 기계 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 NMT)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혁신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구글에 따르면 이 새로운 시스템은 특정 언어 쌍에서 번역 오류를 60% 이상 줄였습니다. 번역 품질 평가에서 인간 번역사가 5점(6점 만점)을 받는다면, 기존 구문 단위 번역은 3.5점, 새로운 신경망 번역은 4.5점 수준까지 향상되었습니다.
이 정도 성능이라면 번역사들이 일자리를 잃었을 법도 한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미국 노동통계청(BLS)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번역사와 통역사의 일자리는 오히려 49.4%나 증가했습니다. 또한 2032년까지 이 직업군의 고용은 4% 더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본 여행에서 구글 번역을 썼는데 완벽했어요. 이제 통역사나 일본어를 배울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애초에 구글 번역이 없었다면 통역사를 고용하거나 일본어를 배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일본에 가지 않거나, 가더라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번역의 진짜 어려움: 문맥과 문화
그렇다면 왜 이토록 발전한 AI 번역 기술에도 불구하고 번역사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을까요? 답은 번역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번역사를 “걸어다니는 사전”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번역사의 업무는 단순한 언어 변환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번역사들은 문맥 파악, 모호성 해결, 문화적 민감성 처리 등의 복잡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노르웨이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노르웨이어는 영어와 매우 유사한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문화적 차이가 있습니다. 노르웨이어에는 정중한 표현이 부족합니다. 기술적으로는 “please”에 해당하는 “vær så snill”이나 “vennligst”가 있지만, 노르웨이인들은 직설적인 소통을 선호해 이런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노르웨이 식탁에서 “Jeg vil ha potetene”(감자를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영어로 직역하면 무례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출처: Unsplash)
식탁에서 노르웨이인이 “Jeg vil ha potetene”(직역: “나는 감자를 가질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를 영어로 직역하면 오만하고 무례하게 들립니다. 영국인이라면 “Could I please have some potatoes?”라고 말할 텐데요. 숙련된 통역사라면 이런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번역하겠지만, 구글 번역은 그저 직역만 제공합니다.
더 극단적인 예로, 법정에서 구글 번역을 통역사 대신 사용했다가 문제가 된 사례도 있습니다. 정확한 의사소통이 중요한 상황에서 AI가 맥락을 무시한 번역을 제공한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도 번역사다
프로그래머와 번역사 사이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직업 모두 “번역”을 하는 일입니다. 번역사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듯, 프로그래머는 인간의 모호하고 문화적 뉘앙스가 담긴 요구사항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명확한 언어로 번역합니다.
최근 등장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용어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OpenAI 공동창업자인 안드레이 카르파시(Andrej Karpathy)가 2025년 2월에 소개한 이 개념은 AI에게 자연어로 설명하면 코드를 생성해주는 방식을 말합니다. “진짜 코딩이 아니라 그냥 보고, 말하고, 실행하고, 복사-붙여넣기 하면 대부분 작동한다”고 카르파시는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카르파시 자신도 바이브 코딩의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AI 도구가 항상 버그를 이해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문제가 생기면 관련 없는 변경사항들을 실험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이 기법을 “주말 프로젝트용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AI 도구와의 현명한 협력
번역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AI 코딩 도구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미국 번역사 협회(American Translators Association)의 브리짓 하일락(Bridget Hylak)은 “2016년 신경망 기계 번역이 도입된 이후 우리 번역사들은 AI를 업무 흐름에 통합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AI가 번역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사들이 AI를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개발자들도 AI 코딩 도구를 단순한 대체재가 아닌 협력 파트너로 여겨야 합니다.
실제로 Y Combinator의 2025년 겨울 배치에 참여한 스타트업 중 25%가 95% AI 생성 코드베이스를 가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개발자가 불필요해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개발자들이 AI 도구를 활용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GitHub Copilot 사용자의 60-75%가 업무 만족도가 높아지고, 코딩할 때 좌절감이 줄어들며,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AI 도구가 반복적이고 단순한 작업을 줄여주어 개발자들이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변화하는 개발자의 역할
물론 AI 코딩 도구의 발전으로 개발자의 역할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코드 작성보다는 AI가 생성한 코드를 검토하고, 요구사항을 명확히 정의하며, 시스템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번역사가 구글 번역을 “내가 원하는 말을 어떻게 표현할지 통계적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을 보여주는 도구”로 활용하듯, 개발자들도 AI 코딩 도구를 “아이디어를 빠르게 프로토타입으로 만들고, 반복적인 코드 작성을 도와주는 어시스턴트”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발자가 생성된 코드를 이해하고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프로그래머 Simon Willison은 “LLM이 모든 코드를 작성했더라도, 당신이 그것을 검토하고 테스트하며 이해했다면 그것은 바이브 코딩이 아니라 LLM을 타이핑 어시스턴트로 사용한 것”이라고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현실적인 전망과 주의사항
AI 코딩 도구의 현재 한계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도구들은 간단한 알고리즘이나 기본적인 작업에는 뛰어나지만, 여러 파일이 연관된 복잡한 프로젝트나 문서화가 부족한 라이브러리를 다루는 일, 실제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코드 작성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습니다.
또한 바이브 코딩 방식으로 제작된 코드베이스는 운영 환경에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업무는 기존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인데, 이때는 코드의 품질과 이해가능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보안 측면에서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개발자가 AI 생성 코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한다면, 탐지되지 않는 버그나 보안 취약점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결론: 공존하는 미래
구글 번역의 사례가 보여주듯, AI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전문가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AI 도구가 접근성을 높이고 시장을 확대하면서, 전문가들은 더 높은 수준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AI 코딩 도구의 발전으로 코딩이 더 접근하기 쉬워지고, 프로토타이핑이 빨라지며, 반복적인 작업이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스템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더 정교한 아키텍처 설계와 품질 관리가 필요해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AI를 두려워하거나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도구들의 장단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입니다. 번역사들이 구글 번역을 워크플로우에 통합했듯, 개발자들도 AI 코딩 도구를 자신의 전문성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결국 AI 시대의 개발자는 코드를 직접 타이핑하는 사람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설계하며,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검토하고 개선하는 역할로 진화할 것입니다. 이는 개발자라는 직업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의 발전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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